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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인 상식
현대마라톤은 장거리 아닌 단거리경주다.
아프리카 마라톤선수들은 몸이 길쭉하다. 얼굴도 갸름하다. 하나같이 모딜리아니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을 닮았다. 다리는 두루미처럼 가늘고 길다. 몸은 마른 북어마냥 깡마르다. 어느 케냐선수는 말한다.
“우리들이 버드나무라면, 유럽선수들은 참나무나 같다. 우리 다리는 결승선까지 리드미컬하고 탄력 있게 움직이지만, 그들의 다리는 갈수록 쿵쿵거리고 천근만근 무거워 진다.”
결국 문제는 스피드다. 현대마라톤은 100m 달리듯이 빨리 달리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다. 더구나 세계유명대회일수록 코스를 평탄하고 쉽게 만들고 있다.
현재 남자마라톤 세계최고기록 보유자는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이다. 그는 2008년 9월28일 제33회 베를린마라톤에서 2시간3분59초로 세계최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2007년 이 대회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기록(2시간4분26초)을 27초 앞당기며 3년 연속 우승한 것이다. 그의 빠르기는 100m를 평균 17.63초의 속도로, 10초에 평균 56.7m를 달린 셈이다.
게브르셀라시에는 2006년 1월 미국 피닉스 하프마라톤에서 58분55초의 세계 최고기록을 세웠다. 만약 똑같은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다면 풀코스를 1시간57분50초에 끊는다는 계산이다.
현대마라톤은 인정사정없다. 비정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스피드전쟁뿐이다. 날로 코스가 평탄해지기 때문에 오버페이스를 크게 염려할 필요도 없다. 베를린대회처럼 날씨까지 선선하면 변수는 오직 스피드뿐이다.
스피드가 있으면 살고, 스피드가 없으면 죽는다. ‘후반 30km이후에 승부를 건다’는 작전은 더 이상 작전도 아니다. 승부는 41km까지 살아남은 선수들끼리만 펼쳐진다. 나머지 1.195km에서 최후의 진검승부가 벌어진다. 승부가 도로 아닌 경기장트랙 위에서 결정된다는 얘기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라톤 트랙게임’은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트랙게임을 벌이는 선수들은 피가 마른다. 입술이 바싹바싹 타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몸은 천근만근 자꾸만 땅속으로 가라앉는다. 오직 정신력으로, 본능적으로 다리를 옮길 뿐이다.
한국마라톤의 장점은 은근과 끈기이다. 거꾸로 말하면 스피드가 부족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게브르셀라시에는 19세 때부터 29세까지 세계 중장거리(1500, 3000, 5000, 10000m)를 휩쓸었다. 10년 동안 크로스컨트리, 5000m, 1000m에서 24번의 세계기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29세인 2002년에야 비로소 런던마라톤 대회에서 처음 풀코스 마라톤을 뛰었다. 그는 마라톤 데뷔이래 단 한번도 2시간6분대 이후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만큼 스피드가 빠르다. 하지만 그도 요즘 내리막 증세를 보이고 있다. 새해마다 세계 맨 처음 열리는 두바이마라톤 기록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는 3년 연속 우승은 했지만, 2008년 2시간4분53초, 2009년 2시간5분29초, 2010년 2시간6분09초로 미끄럼을 타고 있다. 2009년 9월 4번째 베를린마라톤 우승기록도 2시간6분08초에 그쳤다.
현대마라톤에서 2시간5분대를 달리려면 5000m 13분20초 이내, 1만m 27분대에 끊어야 한다. 현재 5000m 세계기록은 12분37초35의 케네니사 베켈레(에티오피아)가 보유하고 있다. 10000m 세계기록 역시 베켈레의 26분17초35이다. 베켈레는 게브르셀라시에 보다 아홉 살 어리다. 키도 게브르셀라시에(160cm)에 비해 6cm 더 크다. 젊고 하드웨어가 좋다. 베켈레가 마라톤에 여러 면에서 더 유리하다. 어쩌면 그가 2시간3분대 벽을 맨 처음 깨뜨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