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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인 상식
맨발의 마라토너 비킬라 아베베
“한국에 두 번째 온다. 6.25전쟁 때 1년 동안 에티오피아대대 대대장경호병(상등병)으로 참전했었다. 마침 이번대회가 9.28수복을 기념하는 대회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더욱 감회가 깊다. 이번대회는 신발을 신고 뛸 것이다. 2년 뒤에 있을 멕시코올림픽에서 반드시 우승, 올림픽 3회 연속 제패를 하고 싶다. 그 뒤엔 후배들을 위해 은퇴한 뒤 코치생활을 할 것이다. 고지대인 멕시코올림픽에선 어렵겠지만 다른 곳에서라면 2시간5분대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1966년 10월26일 ‘맨발의 마라토너’ 비킬라 아베베(1932~1973)가 서울에 왔다. 코밑수염에 깡마른 체격(174cm 58kg). 흰 와이셔츠에 붉은 줄무늬 넥타이 차림. 녹두색 스웨터에 쥐색 싱글을 받쳐 입었다. 서른넷의 중년나이. 그는 시종 무뚝뚝했다. 그러나 자신감이 철철 넘쳤다.
그는 동아일보가 주최한 9.28수복기념국제마라톤대회에 초청선수로 참가했다. 호주의 크라크, 미국의 히킨스, 일본의 2시간15분대 두 선수(寺澤, 君原) 등 또 다른 초청선수들도 만만치 않았다.
10월28일 아베베는 코스답사를 하면서 20km를 1시간5분에 달렸다. 컨디션은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시차부담이 있는 듯 몸이 무거웠다. 레이스는 10월30일 낮 12시에 펼쳐졌다. 날씨는 약간 더웠다. 섭씨 16도에 습도 75%, 초속 1~1.5m의 남서풍. 인천 올림포스호텔 앞을 출발해 서울을 향해 국도를 따라 달렸다.
레이스는 싱겁게 끝났다. 일본선수들과 선두권을 형성하며 달리던 아베베는 15km지점에서 치고나갔다. 일본선수들은 필사적으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0km지점부터는 아베베의 완전독주였다. 2시간17분4초 우승. 2위 일본선수(寺澤,2시간19분35초)와는 2분31초 차. 4위 한국의 김봉래(2시간24분57초)보다는 무려 7분53초나 빨랐다.
아베베는 “항상 우승했기 때문에 우승에 대한 소감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목표가 11분대 돌파였으나 25km지점에서 왼쪽발목을 삔 데다 발에 물집까지 생겨 한때 레이스를 포기할까 생각도 했다”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아베베의 공식대회 우승은 동아일보가 주최한 그 대회가 마지막이었다. 그는 1968년 멕시코올림픽마라톤 레이스 도중(17km지점) 다리가 부러져 포기했다. 그리고 그 뒤로 다시는 달릴 수 없었다.
아베베는 1956년 에티오피아 전국군인마라톤에서 첫 출전 우승하며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스물넷의 씩씩한 군인. 그는 원래 소치는 목동이었다. 해발 3000m 고지대 초원에서 소를 몰면서 자연스럽게 심장과 다리근육을 키웠던 것이다. 그는 생애 15번 공식대회에 참가해 12번 우승(2번 기권)했다. 63년 보스턴마라톤 5위가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대회였다. 전성기인 64년(3회), 65년(1회), 66년(2회)엔 참가만 하면 모두 우승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66년 10월30일 동아일보주최 9.28수복기념국제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뒤 내리막세가 뚜렷했다. 67년 참가대회에서 사상 첫 기권을 하더니, 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도 도중에 레이스를 접었다.
아베베 신화는 누가 뭐래도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탄생했다. 그는 맨발로 달려 우승했다. 결승선을 끊고도 “아직 20km는 더 달릴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는 그때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단 2번밖에 완주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2시간15분17초 세계최고기록을 세우면서 아프리카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더구나 이탈리아는 그의 조국 에티오피아를 빼앗았던 나라였다. 1935년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침공해 1941년까지 6년 동안 무단 점령했던 것이다. 세계 언론은 그의 로마올림픽 우승을 상징적으로 묘사했다.
“에티오피아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모든 이탈리아군이 필요했지만, 로마를 점령하는 데는 단 한명의 에티오피아군(아베베는 당시 하사관신분)으로 가능했다.”
아베베도 “나는 다만 달릴 뿐이다. 나는 내 조국 에티오피아가 항상 단호하고 영웅적으로 시련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며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침공 사실을 떠올렸다.
아베베는 왜 맨발로 달렸을까. 당시 에티오피아올림픽대표팀 후원사는 독일의 아디다스였다. 당연히 선수들에게 신발이 지급됐다. 아베베는 선수단에 막판에 합류했다. 신발여분은 있었지만 발에 맞는 게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맨발로 뛰는 게 나았다. 마침 아베베는 연습 때 거의 맨발로 달렸던 참이었다.
아베베가 로마올림픽에서 돌아오는 날, 에티오피아 하일레셀라시에 황제는 40여리를 마중 나와 그를 맞았다.
“축하하오. 당신은 황제인 나보다 열배 백배 우리 에티오피아 이름을 만방에 떨쳤소! 장하오!”
황제는 왕관을 벗어 아베베 머리 위에 씌워줬다.
아베베신화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도 계속됐다. 누구도 그의 우승을 예상하지 못했다. 올림픽 5주일 전에 맹장수술을 하는 바람에 그는 우승후보에서 일찌감치 밀려나 있었다. 9월16일 맹장수술을 받았고 9월27일 훈련을 재개했다. 그리고 10월21일 우승했다.
이번엔 맨발이 아닌 아식스 신발을 신고 달렸다. 2시간12분12초 세계최고기록.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이자 2회 연속 세계최고기록 올림픽우승이었다. 하지만 시상대에서 에티오피아국기는 올라갔지만 국가는 일본국가인 기미가요가 연주됐다. 도쿄올림픽조직위가 “에티오피아국가를 모른다”며 개최국인 일본 국가를 연주한 것이다. 참으로 소가 웃을 일이었다.
“적은 67명의 다른 선수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그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나는 남들과 경쟁하여 이긴다는 생각보다 내 고통을 이긴다는 생각으로 달린다. 고통과 괴로움에 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달렸을 때 승리가 찾아왔다.”
69년 2월 아베베가 쓰러졌다. 훈련을 마친 뒤, 황제가 하사한 폭스바겐을 몰고 가다가 빗길에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목이 부러지고 척추가 다쳐 하반신이 마비됐다. 하지만 아베베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1970년 노르웨이 25km 휠체어 눈썰매크로스컨트리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10km레이스에선 특별상도 받았다. 장애인올림픽 양궁과 탁구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내 다리로는 더 달릴 수 없지만 나에겐 두 팔이 있다.”며 의지를 불 태웠다.
아베베는 1973년 41세 나이에 뇌종양으로 숨졌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성 요셉 공동묘지에 묻혔다. 무덤 좌우엔 그의 올림픽우승골인장면을 묘사한 두 개의 동상이 서 있다. 한쪽은 로마올림픽 때의 맨발의 아베베, 또 다른 쪽은 운동화를 신고 결승선에 들어오는 도쿄올림픽 골인장면.
짧지만 굵직한 삶. 그의 무덤 안내문엔 ‘영웅, 여기에 묻혀있다’고 적혀있다. 그렇다. 그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영웅이었고, 아프리카사람들의 영웅이었고, 전 인류의 영웅이었다. 진정 인간승리의 주인공이었다.